붕부리의 산행스케치
1박2일 대마도 여행 - 이즈하라 시내관광 본문
1. 일 시 : 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2. 날 씨 : 맑음
3. 동 행 : 회사 부서원들과 함께
4. 여행지 : 대마도 이즈하라, 카미자카 전망대 등
1박2일 대마도 여행 2일차 일정으로 이즈하라 시내 도보관광을 하였다.
이즈하라 시내관광 하다보니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조용한 것이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인들이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면세점 쇼핑을 하는 것을 모든 관광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츠로 이동하는데 약 2시간이 소요되었고,
히타카츠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것으로 대마도 1박2일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짧은 여행일정이지만 대마도를 여행하면서 우리 나라와 일본의 불행했던 역사와 영토 분쟁을 떠나서
일본인들이 전통과 문화를 잘 계승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질서을 잘 지키며 주어진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면서
1~200년 앞을 내다보면서 편백나무 등을 심는 등 일본인들의 국민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즈하라
대마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쓰시마 시청을 비롯하여 각종 관공서, 은행 등이 있는 대마도 행정, 경제의 중심지로 대마도 인구의 약 절반이 2만명이 이즈하라에 거주한다고 한다. 대마역사박물관, 하치만구(팔번궁)신사, 조선통신사비 등 주요관광지가 있고, 시내에는 호텔, 쇼핑몰, 식당, 이자카야(선술집) 등이 있다.
하루 밤을 유했던 대아호텔
이즈하라 항구
이즈하라 골목 풍경
수선사
서기 656년 백제(百濟)의 비구니(比丘尼)인 법묘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경내의 수선(修善:슈젠)이라는 현판은 조선말 판서를 지낸 김학진 선생의 친필로써 지금도 낙관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의병출신의 최익현선생의 유해가 잠시 안치되었던 곳이다.
최익현 선생 순국비
의병장 최익현(崔益鉉<1833~1906)은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다가 1906년 피체되었다. 징역 3년을 받고 대마도로 끌려온 최익현은 74세 고령의 나이임에도 적이 주는 음식이라 거절하며 단식하다가 1907년 1월 1일 이즈하라쵸에서 순국하였다. 최익현의 유해는 이곳에 며칠 동안 안치되다가 부산항으로 이송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최익현 선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수선사에 1986년 8월 순국기념비를 세웠다.
이즈하라 거리 풍경
나카무라 지구 성
나카라이 토스이 문학관
하치만구(팔번궁)신사
하치만구신사는 일본의 덴진, 이나리신사와 더불어 3대 계파의 신사로 일본본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하치만구 신사는 우리나라와도 연관이 있는 데, 옛날 삼한을 정벌 하였다는 신화속의 인물 "신공황후"를 모시는 신사로 마한, 진한, 변한을 정벌하였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치만구신사의 왼쪽 구석에 '이마미야 진쟈(今宮神社)'가 있는데 이는 대마도 번주 '소오 요시토시'의 부인이며, 한때 풍신수길이 천하를 호령하는데 동참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딸이었던 '고니시 마리아'의 혼백이 모셔져 있고, '마리아,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통신사비
1697~1811(210년)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두었다. 대마도에는 이곳 외에 수많은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300~500명 정도의 인원이었으며 당시 통신사 일행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를 '누에'와 비교할 정도이니 그 광경을 짐작할만하다.
고려문
본래는 대마도주가 기거하던 ‘사지끼바라죠(棧原城)’의 제3문으로 세워진 것을 이곳(조선 통신사비 옆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조선통신사를 성대하게 대접하기 위해서 만든 것 이라고 한다. 우리 건축물 양식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말 그대로 고려시대 출입문 형식을 따서 만든 것이다. 나가사키현립 역사자료관 오르는 길목에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쓰시마 번주 소 타케유키(宗 武志)백작과 결혼하였다. 이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쓰시마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正惠가 있었으며 1955년 이혼 후 1961년에 귀국한 덕혜옹주는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현 기념비는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다.
쓰시마시청
카미자카공원(上見坂公園)의 전망대
표고 385m의 전망대로, 일본을 대표하는 리아스식 해안(육지의 침강으로 생성된 해안)인 아소만이 눈 아래에 펼쳐지며, 멀리 큐슈 본토와 한국의 산들이 보이는 국경의 섬 대마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소오다케유키(宗武志)의 시비(詩碑)
카미자카(上見坂) 전망대 잔디밭에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德惠翁主)의 남편 소오다케유키(宗武志)가 1964년 대마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신 대마도지(新 對馬島誌)"의 서문으로 쓴 작품을 새긴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는데
이 시(詩)의 내용을 보면
섬도 야위었지만 친구도 야위었다.
물고기를 조각하면서 가만히 바다 조류를 본다.
그래도 나에게는 꿈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웃겠지만
심야(深夜)에 세계지도를 펴고
콤파스를 잡고 대마섬을 축으로 크게 돌린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사진
바위산이 시라다케라고 한다.
아소만이 보이고
사진 중간에 대마도 공항이 보인다
카미자카 공원의 일본군 진지
카미자카에 들어서면 뒷쪽 산책로 주변에 메이지시대(약 1860년대 경)에 건립된 일본군의 통신시설과 포대, 진지, 참호 등의 흔적이 있다.카미자카는 주변의 해안이 잘 보이고 동태를 파악하기가 용이하여 이곳에 시멘트로 군사 요새를 만들었다.러.일 전쟁 준비를 위한 포대와 콘크리트 병영 숙소는 두꺼운 벽으로 만들어져 웬만한 폭격에도 견딜 정도로 견고하다.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이치라쿠 면세점
이즈하라 시내풍경
이즈하라 우체국
대마도 최대 쇼핑몰 티아라
대마도 해안풍경
히타카츠 여객터미널을 떠나면서
부산 해운대와 장산이 보이고
용호동 아파트(좌)와 오륙도(우) 보이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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