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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부리의 산행스케치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본문

해외여행/중국여행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붕부리 2013. 2. 8. 05:14

1. 일  시 :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2. 날  씨 : 맑음

3. 동  행 : 가족들과 함께

4. 여행지 : 타이베이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타이완(臺灣) 지도

 

타이베이(臺北) 지도

 

 

타이완 여행을 마치면서...

3박 4일간의 짧은 타이완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점은 비록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지만

사회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국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에 패퇴하면서 대륙에서 이 작은 섬 타이완으로 밀려나게 되어

1949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국가를 수립한 한지 이제 겨우 60년이 조금 지난 짧은 역사에 불과하고,

1990대 초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서방국가와 수교를 하면서

타이완의 중화민국은 전통적인 우방국가들과 단교를 당하고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만

중국인 특유의 인내와 근면함으로 건실한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륙의 중국과 타이완은 과거 적대적 관계에서 이제는 하루에도 수천수만명이 경제협력과 관광을 목적으로

대륙과 타이완을 오간다고 하니 민족의 공동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중국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타이베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장소 중 한 곳으로 대만의 영웅 장제스(장개석)을 위한 기념물이다. 그림같이 조경이 잘 된 광대한 정원 위에 거대한 건물인 기념관이 서 있고, 우아한 정자, 연못 등이 배치되어 있다. 25톤의 장제스 총통 동상이 서쪽 중국 본토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중국본토를 수복하겠다는 장제스 총통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사진과 총통의 생애에 관한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당의 높이는 70m이며, 중화 문화의 품격을 잘 반여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외부는 청색과 흰색 두 가지를 주로 하고 있는데, 이 색들은 자유와 평등을 상징한다, 우아한 명나라식의 아치가 정문이며 양측에 두 개의 고전적 건물이 있는데 각각 국가극원과 국가음악청이 있다. 광장에는 매일 5시경부터 태극권, 포크 댄스, 배드민턴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장제스(蔣介石, 1887.10.31 ~ 1975.4.5)

본명은 장중정(蔣中正). 중화민국의 총통을 역임한 중국의 정치가.
1887년 10월 31일 중국 저장성(折江省) 펑화현(奉化縣)에서 태어나 1906년 바오딩(保定)의 군관학교에 입학했으며, 이듬해 일본으로 가 진무학교(振武學校)에서 군사학을 공부하였다. 했다. 일본유학 중에 쑨원(孫文)의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였고, 1911년 무창봉기(武昌起義)가 발발한 후에 중국으로 돌아가 신해혁명에 가담하였다.

쑨원의 신임을 얻어 23년에 소련을 시찰하고 귀국하였으며, 황푸 군관학교 교장을 거쳐 쑨원 사망 이듬해인 26년에 국민당을 장악하였으며, 국공합작(國共合作)하의 국민 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같은 해 7월 북벌(北伐)을 시작했으며, 1927년 상해(上海)쿠데타로 국공합작(國共合作)을 붕괴시키고, 28년 10월 북벌의 완성으로 남경을 수도로 한 국민정부가 중국을 대표하는 중앙정부가 됨으로써 이른바 '남경시대(南京時代 : 1928∼1937)'가 개막됐다. 장제스는 주석자리에 올랐다.
이후 장제스의 5차에 걸친 공산당 토벌과 중국 공산당의 장정(長征)을 거치는 동안 이러한 중국의 약화와 분열을 틈탄 일본은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정권인 만주국(滿洲國)을 세워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이에 중국 내에서는 항일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장제스는 국내를 안정시킨 다음에 외적을 진압한다는 소위 안내양외(安內攘外)를 주장하면서 일본군과의 충돌을 피했기 때문에 학생이나 지식인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항일을 주장한 중국공산당 측은 폭넓은 동조를 받았다.
그러나 서안사건(西安事件)·노구교사건(盧溝橋事件)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성립시켜 항일전(抗日戰)을 전개하지만 45년 일본 패망 후 벌어진 전면적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49년 12월 타이완으로 정부를 옮겼다. 중화민국 총통 겸 국민당 총재로서 대만을 지배하던 장제스는 1975년 4월 5일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한편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 여사는 2003년 10월 10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쑹메이링은 49년 국민당 정권이 대만으로 옮겨간 뒤 빼어난 미모와 영어구사 능력, 재력 등을 동원해 미국의 정·관·재계에 '타이완 커넥션'을 구축하는 데 앞장섰으며, 장제스가 시안(西安)사건 당시
국·공 합작을 통한 항일 전쟁을 요구하는 장쉐량(張學良)에 의해 연금되자 직접 나서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장제스가 사망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살았다. 쑹메이링의 언니 쑹칭링(宋慶齡)은 쑨원의 부인이었다. 큰언니 아이링(靄齡)은 당시 대재벌이었던 쿵상시(孔祥熙)와 결혼하여 이들 세자매는 '宋씨 세 자매'란 애칭으로 중국 대륙에서 이름을 떨쳤었다.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인 101 빌딩

 

장제스의 부인인 쑹메이링(宋美齡) 여사의 제안으로 짓어진 위엔산(圓山大飯店, 그랜드) 호텔

 

타이베이 거리 풍경

 

 

중정기념당 북문인 대충문(大忠門)

 

중정기념당

 

중정기념당 중앙홀

 

 

전시실

 

 

 

 

우리 정부가 장제스 총통에게 수여한 대한민국 건국훈장

 

 

 

 

 

남문인 대효문(大孝門)

 

중정기념당 옆에 있는 국가극원

 

중정기념당 정문

 

타이베이 기차역

 

타이베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탄쉐이허(淡水河)

 

탄쉐이허 지류 둔치 풍경

 

 

타오위안(挑園) 국제공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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